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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회사법무팀 압수수색 남발…"기업 방어권 털어가나"

전방위 기업수사에 대한 변호사업계 불만 급증

검찰·공정위·국세청·금감원…
법률자문 목록·법무팀장 PC 등
영장도 없이 임의제출 압박
기업들 `밉보일라` 속앓이만

美, 변호사·의뢰인 자문내용
비밀유지권 법적으로 보장
독일은 로펌 압수수색 못해

  • 채종원,성승훈 기자
  • 입력 : 2019.01.07 17:48:32   수정 : 2019.01.08 19: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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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이찬희 변협회장 후보
"의뢰인과 변호인은 최상의 변론을 위해 모든 사안을 공유해야 하는데, 변호인이 제공한 법률 자문 문건들이 사정기관에 넘어간다면 기업의 방어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역임한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후보는 7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기업의 방어권 침해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검찰 등 사정기관들의 전방위 압박에 기업들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기본적 방어권조차 빼앗기고 있다는 논란이 거세다. 이런 지적과 불만은 최근 새 집행부 선거가 한창인 변호사단체를 중심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기업은 언제 또 조사를 받을지 몰라 하소연조차 못해 이를 지켜본 변호사들이 대신 나선 것이다. 서울변회 등에 따르면 사정기관이 기업들의 법적 방어권을 침해하는 사례로 △사내 법률 자료의 포괄적 임의제출 요구 △자문 맡긴 로펌 압수수색 △사정기관 압박으로 인한 의뢰인과 변호인 간 정보 공유 부족 등이 꼽힌다.

염용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직무대행은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영치(피의자가 임의제출한 자료를 국가 기관이 영장 없이 맡아 보관하는 행위)를 사실상 강제 수사에 준해 운영하고 있고, 법무팀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조사 방해로 처벌받을 수 있어 기관이 요구하는 자료를 대부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법무실 임원 변호사는 "압수수색의 주요 타깃이 기획조정실, 비서실에서 2010년 이후 법무실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2017년 12월 서울중앙지검은 `주한미군기지 공사 비리 사건`과 관련해 SK건설 법무팀을 압수수색했다. 법무팀 자료를 우선 확보하는 이유는 기업의 내·외부 거래 관련 법률 대응 방안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외부 로펌에 의뢰해 받은 법률의견서를 함께 얻을 수 있어서다. 이 자료들은 각 기업이 받는 수사 또는 조사에 대해 사전에 그 기업이 위법성 여부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 기업 전문 변호사는 "법적 리스크를 인지하고 내부 거래를 한 자료가 있다면 공정위는 해당 기업의 부당 거래 관련 범죄 혐의 입증이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정기관들이 포괄적으로 자료를 압수하거나 압수수색 영장 없이 압박을 통한 임의제출 방식으로 자료를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과 경찰은 법원의 판단을 먼저 구하기 때문에 그 강도가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공정위,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이 오랜 관행을 내세우며 자료를 가져가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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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청은 정기 세무조사를 앞둔 한 대기업에 외부 변호사로부터 받은 의견서를 모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은 법률 자문 목록을 제출하라는 취지로 금융사들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도 참고인 지위였던 한 보험사를 수사하면서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법무팀장의 업무용 컴퓨터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했다. 이 컴퓨터에서 외부 로펌이 제공한 법률의견서 다수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견 변호사는 "일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법무팀에서 임의제출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사 인력을 장기간 법무팀에 상주시키는 것도 방어권 침해 사례라고 변호사들은 지적한다. 지난해 2월 공정위는 유명 화장품 기업이 계열사에 화장품 원재료 등을 정상 가격에 공급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내에 마련된 장소에서 법무팀을 조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기업 사내 변호사는 "사정기관 관계자가 법무팀에 함께 있는 것으로도 압박이 되고, 내부적으로 법률 대응을 논의하고 싶어도 조사관 눈치를 봐야 해 결과적으로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지적했다.

서울변회장 후보로 출마한 박종우 변호사는 "사내 변호사들은 법무팀에 대한 빈번한 압수수색이 팀 위상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 주요 정보를 법무팀과 공유하지 않게 돼 사실상 팀 역할이 미미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류윤교 사내변호사회 이사는 "기업이 사내 변호사를 믿지 못하면 결국 제대로 된 법률 자문을 제공받을 수 없어 준법경영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에는 법률 대리를 맡는 로펌을 상대로 압수수색 등을 하는 수사·조사 방식은 중단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2016년 서울중앙지검은 롯데그룹 총수 일가를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수사 과정의 일부였지만 변호사 업계에선 충격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 당시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변호인의 기본적 권리·의무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기업 수사가 진행될 때마다 로펌이 압수수색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면 의뢰인이 변호를 받을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변호사 업계는 미국의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ACP), 이른바 비밀유지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찬희 후보는 "기업 법무팀, 로펌과 의뢰인 간 주고받은 법률 자문에 대해 공개를 거절할 수 있는 제도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제공한 법률 자문 자료 등을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기관이 보고 이를 증거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대한변협 회장 선거 핵심 공약에도 포함됐다.
국회에도 관련 법률안이 제출돼 계류 중이다.

미국은 다수 판례를 통해 ACP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ACP에 따라 보호돼야 할 서류가 있다면 별도 필터팀(Filter Team)을 구성해 압수수색을 실시한다. 독일은 범죄 증거 자료 획득을 목적으로 로펌을 압수수색할 수 없다.

[채종원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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