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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북한의 설 풍경

  • 장혜원 기자
  • 입력 : 2019.02.12 06:01:02   수정 : 2019.02.12 16: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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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72]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설명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음식(떡국, 송편, 돼지고기)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다. 나이만큼 떡국 떡을 먹어야 한다는 속설도 있지만, 실제로 떡을 세어 먹는 사람은 없다. 떡국 육수로는 돼지고기를 주로 사용한다. 이것이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육류이기 때문이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주요 매체들에서 북한의 대표적인 설음식으로 떡국과 녹두지짐(녹두로 만든 전) 등을 소개하지만 실제로 설에 녹두지짐을 해 먹는 집은 드물다. 녹두지짐은 감자전과 마찬가지로 소주나 막걸리 안주로 즐겨 먹고, 간식거리로 즐기기도 한다.

떡국과 함께 즐겨 먹는 설음식으로 송편이 있다. 남한에서는 주로 추석에 많이 먹지만 북한에서는 송편을 설을 비롯한 각종 명절에 특별히 챙겨 먹는다. 남한에서는 어느 동네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떡집에서 아무 때나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떡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여전히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송편, 인절미 등은 명절에나 맛볼 수 있는 별식이다. 돼지고기, 생선 같은 것들도 특정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별식 중 별식이다.

달걀, 두부 같은 음식들도 북한에서 늘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에서 최소 100㎏에서 보통 200~300㎏씩 만들어 놓는 김장김치를 빼고는 다들 귀한 식재료다. 장마당(시장)에 깨끗하게 손질되고 소량으로 포장된 식재료들이 늘어나고, 명절 음식이나 평일 음식이나 큰 차이가 없는 집들도 많아졌다고 하지만 이는 일부 계층에만 국한된 얘기다. 북한에는 여전히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이들은 별식을 먹을 수 있는 설날을 기다린다.

#오락(윷놀이, 사사끼)

남한에 설 특선영화가 있다면 북한에는 설 특별방송으로 방영되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평양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텔레비전으로 즐길 수 있는 채널은 단 하나뿐이다. 그래도 설은 즐겁다! 아이들은 연날리기, 썰매타기 등으로 설 분위기를 내고, 어른들은 윷놀이를 하거나 주패(카드놀이를 이르는 북한 말)로 사사끼(카드놀이의 일종)를 한다. 사사끼는 카드와 2명 이상만 있으면 가능한 데다 쉽고 재미있어 지역과 성별, 연령대를 불문하고 오랜 기간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담요 밑에 깔아두는 판돈 액수가 참여자의 몰입도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설 인사(세뱃돈, 스승, 낡은 관습)

설 인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세뱃돈이다. 아이들은 넙죽 엎드려 절하기만 하면 두둑한 용돈이 생기고, 어른들은 세뱃돈으로 지갑이 텅 비게 된다. 아이들 나이에 따라 금액이 다른 것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 비슷하다. 다른 점은 보통 가족들과 설을 보내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거주지에 있는 학교의 담임 선생님이나 기업소(기업) 당위원장, 지배인 등 조직 책임자를 찾아가 인사를 한다. 조부모님(혹은 부모님)이 가까이에 산다면 당연히 찾아가지만, 대체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가족들이 전부 모이는 것은 설날이 아니라 가족 중 누군가가 결혼하거나 상을 당했을 때에야 가능하다. 도(都) 경계를 넘어 이동할 때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증명해주는 것이 `여행증명서`인데, 이것을 발급할 때 여행목적란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모(혹은 부) 병 위급` `조카 결혼식` `제사` 등이다. 여행증명서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목적은 용납되지 않는다. 반드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해당 목적을 확인하는 것은 아니라서 하나밖에 없는 조카 결혼식을 필요에 따라 여러 번 하기도(서류상으로) 한다. 목적지가 평양이나 국경 지역, 전연지대(군사분계선상 전방지대)라면 여행증명서 발급 절차가 훨씬 까다롭다. 그리고 이때는 여행 목적을 깐깐하게 확인한다. 물론 현금으로 뇌물을 찔러주면 한결 쉽게 해결된다.

낡은 관습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여자는(어른이나 아이나 상관없이) 대체로 설날 오전에 바깥 출입을 삼가야 한다.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물론 자기 집에서도 남편이나 아들이 먼저 새해 첫날 문을 열어야 한다. 설날 음식을 이웃들과 나눠 먹는 풍습이 있는데, 반드시 남자아이에게 들려 보내는 것이 일종의 이웃 간 설 인사다. 설날 집 문을 처음 연 사람이 여자면 `재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간혹 이웃집 딸이나 아내가 먼저 인사하러 오면 `예의가 없다`고 한다. 여자들만 사는 집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때도 최대한 점심 이후에 인사를 가거나 밖을 나서야 예의가 있다고 한다.


경제 영역에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속도전을 추구하는 북한이지만, 정치·사회문화 영역에서는 왕조 체제와 같은 사회 시스템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민이 옛 시대 낡은 관습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암묵적으로 압박한다. 겉으로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강조하면서도, 공자(孔子)의 말과 달리 군(君)의 책임은 슬그머니 밀어둔 채 신(臣)과 자(子)의 충성만이 의무라고 한다. 황금돼지 해인 올해 북한 주민들에게도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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